💌그리운 쟤에게 쓰는 무수의 편지
2022년 12월 9일 새벽, 애정하는 쟤가 하늘로 떠났습니다. 쟤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용기있게 목소리 낸 사람이었고, <아픈 몸과 사는 글쓰기> 라이츠 서포터로 타인의 아픈 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응원하는 사람이었어요. 쟤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계신 곳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그리운 쟤에게
쟤,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아프지 않고 숨을 편안하게 쉬고 있겠죠. 그곳엔 방 한구석에 두툼한 약 봉투도 없고 아픔을 심드렁하게 넘기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마냥 자유롭게 있으면 좋을 텐데 쟤라면 그곳에서도 이곳을 지켜보며 마음 쓰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긴시간을 나누진 않았지만 쟤를 동료이자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떠난 게 처음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쟤가 떠난 게 실감이 나지 않는 거 같아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연락하면 답장이 올거 같아요.
올해 4월 7일, 제가 처음으로 쟤에게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그때 쟤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책<아픈 몸, 무대에 서다>를 읽고 이 문장이 깊게 남아있다고 전했었죠.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듣고자 하는 태도'였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편안히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바짝 귀를 기울이는 태도 말이다. 나중에서야 그 귀 기울임이 ‘존중의 기본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듣고자 하는 태도를 존중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하는 쟤라면 타인의 아픈 몸 이야기를 잘 듣고 또 끌어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쟤는 검사받기 위해 종일 병원에 있었는데 뜻밖의 소식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 정신차렸다며 제안을 기쁘게 받아주었죠. 그 덕분에 우린 같이 작은 시작을 만들어볼 수 있었어요.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 텐데 적극적으로 고민해줘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아픈 몸으로 사는 3명의 스피커와 연결되고 같이 일상에 대한 글을 나눴잖아요. 쟤도 함께 글을 써주고 다정한 피드백을 전해서 그게 모두에게 힘이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소소하고 기쁜 순간들이었네요. 그 글을 쟤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다시 읽어봤어요. 그때도 세심히 읽었다고 여겼는데 이전에 느껴지지 않았던 게 전해지더라고요. 쟤가 얼마나 아팠을지 외로웠을지 두려웠을지 그럼에도 용기내며 하루를 살았는지 말이죠.
한 달 전쯤, 쟤가 라이츠를 준비하며 찍은 사진이 너무 좋아서 영정사진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문자했잖아요. 미안할 일도 아닌데 양해를 구하며 지금 당장 닥칠 일은 아니지만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거 같다고요. 저는 그때 집으로 가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있었는데 문자를 받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심호흡하다가 답장을 보냈어요.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어떨지 묻고 싶었고 슬프고 걱정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담담한 쟤가 느껴져서 전하지 못했어요. 그때 쟤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요? 제가 그 말을 하는 게 더 좋았을까요? 장례식장에서 쟤의 사진을 보며 많이 후회했어요. 더 자주 연락해볼걸, 용기 내서 병문안을 가도 괜찮을지 묻기라도 해볼걸, 같이 오래 살자고 무턱대고 희망적인 말을 전해볼걸 하고요. 떠나간 뒤에야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올라서 슬퍼요.
장례식장에서 라이츠에서 함께 글을 나눈 스피커들과 만나 울고 웃으며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켜보고 있었죠? 그때 이야기를 나누며 과연 내가 쟤였다면 그처럼 다정할 수 있었을까 질문했지만 아무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했고 사려깊었고 자신뿐 아니라 무수한 존재와 지역,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생일에도 장례식에서도 후원하도록 독려하는 모습에 존경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쟤에게 받은 건 ‘용기'라고 느껴요. 쟤의 목소리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전해준 용기를 제 마음속 깊이 심어두었어요. 거기에 물도 주고 영양분도 주면서 무럭무럭 키워나갈게요. 용기있게 살아갈게요. 그곳에서 지켜봐줘요.
쟤를 그리워하는 무수가
그리운 쟤에게
쟤,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아프지 않고 숨을 편안하게 쉬고 있겠죠. 그곳엔 방 한구석에 두툼한 약 봉투도 없고 아픔을 심드렁하게 넘기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마냥 자유롭게 있으면 좋을 텐데 쟤라면 그곳에서도 이곳을 지켜보며 마음 쓰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긴시간을 나누진 않았지만 쟤를 동료이자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떠난 게 처음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쟤가 떠난 게 실감이 나지 않는 거 같아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연락하면 답장이 올거 같아요.
올해 4월 7일, 제가 처음으로 쟤에게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그때 쟤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책<아픈 몸, 무대에 서다>를 읽고 이 문장이 깊게 남아있다고 전했었죠.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듣고자 하는 태도'였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편안히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바짝 귀를 기울이는 태도 말이다. 나중에서야 그 귀 기울임이 ‘존중의 기본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듣고자 하는 태도를 존중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하는 쟤라면 타인의 아픈 몸 이야기를 잘 듣고 또 끌어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쟤는 검사받기 위해 종일 병원에 있었는데 뜻밖의 소식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 정신차렸다며 제안을 기쁘게 받아주었죠. 그 덕분에 우린 같이 작은 시작을 만들어볼 수 있었어요.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 텐데 적극적으로 고민해줘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아픈 몸으로 사는 3명의 스피커와 연결되고 같이 일상에 대한 글을 나눴잖아요. 쟤도 함께 글을 써주고 다정한 피드백을 전해서 그게 모두에게 힘이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소소하고 기쁜 순간들이었네요. 그 글을 쟤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다시 읽어봤어요. 그때도 세심히 읽었다고 여겼는데 이전에 느껴지지 않았던 게 전해지더라고요. 쟤가 얼마나 아팠을지 외로웠을지 두려웠을지 그럼에도 용기내며 하루를 살았는지 말이죠.
한 달 전쯤, 쟤가 라이츠를 준비하며 찍은 사진이 너무 좋아서 영정사진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문자했잖아요. 미안할 일도 아닌데 양해를 구하며 지금 당장 닥칠 일은 아니지만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거 같다고요. 저는 그때 집으로 가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있었는데 문자를 받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심호흡하다가 답장을 보냈어요.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어떨지 묻고 싶었고 슬프고 걱정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담담한 쟤가 느껴져서 전하지 못했어요. 그때 쟤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요? 제가 그 말을 하는 게 더 좋았을까요? 장례식장에서 쟤의 사진을 보며 많이 후회했어요. 더 자주 연락해볼걸, 용기 내서 병문안을 가도 괜찮을지 묻기라도 해볼걸, 같이 오래 살자고 무턱대고 희망적인 말을 전해볼걸 하고요. 떠나간 뒤에야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올라서 슬퍼요.
장례식장에서 라이츠에서 함께 글을 나눈 스피커들과 만나 울고 웃으며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켜보고 있었죠? 그때 이야기를 나누며 과연 내가 쟤였다면 그처럼 다정할 수 있었을까 질문했지만 아무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했고 사려깊었고 자신뿐 아니라 무수한 존재와 지역,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생일에도 장례식에서도 후원하도록 독려하는 모습에 존경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쟤에게 받은 건 ‘용기'라고 느껴요. 쟤의 목소리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전해준 용기를 제 마음속 깊이 심어두었어요. 거기에 물도 주고 영양분도 주면서 무럭무럭 키워나갈게요. 용기있게 살아갈게요. 그곳에서 지켜봐줘요.
쟤를 그리워하는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