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쟤에게 쓰는 이소의 편지
2022년 12월 9일 새벽, 애정하는 쟤가 하늘로 떠났습니다. 재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용기있게 목소리 낸 사람이었고, <아픈 몸과 사는 글쓰기> 라이츠 서포터로 타인의 아픈 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응원하는 사람이었어요. 재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계신 곳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글 친구이자 동네주민인 쟤에게
쟤 안녕요! 아픈 몸 글쓰기를 함께 한 글 동료이자 같은 구에 사는 동네주민 이소입니다. 하늘나라에 간 쟤의 소식을 들고 “친구 장례식장 다녀올게요” 라고 옆에 있던 아버지에게 말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네요. 덤덤할 줄 알았는데.
흘러나온 울음에 대해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 쟤의 오래된 친구는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갖고 있는 성인 ADHD라는 증상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둔감한 부분도 있거든요. 덕분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응당 ‘이때는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공감보다는 암기로 대응해왔어요. 쟤의 소식을 듣고도 평소마냥 타인의 감정을 애써 짐작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바로 펑 울고 있는 나라니. 퍽 낯설었습니다.
아픈 몸에 대해 말하는 나의 시도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글쓰기 동료여서일까요? 하늘나라에 간 쟤를 생각하며 여러 것이 떠올랐습니다. 더이상 인스타그램에서 쟤의 소식을 알 수 없다는 것. 멀리서나마 서로의 SNS 계정에 댓글로 응원을 보낼 가능성이 사라지는 일. 자신의 글로, 글 모임에서 화면 너머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쟤의 몸과 마음을 더이상 느낄 수 없을 거잖아요. 어쩌다 동네 하천을 산책하다가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할 수 있었을 가능성까지도요.
'내가 잠깐 한달을 나가 살아도 우리 엄마는 내가 없어서 쓸쓸하다 했는데. 쟤의 부재는 그것보다 가늠할 수 없는 상실이겠다.' 장례식장에서 쟤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대화 도중 숫자를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제 머리가 고통의 정도를 나름 계산하고 있었어요. 쟤의 부재가 제 경험 바깥의 고통이라고 느꼈어요.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글쓰기 모임에서 제가 쟤를 만날 때 느꼈던 건 그 압도감이었어요. 그래서 쟤가 느꼈을 신체적 고통 자체보다는 쟤가 쓴 글 자체에서 드러나는 단어 사용이나 문장 등의 반짝거림에 더 집중하며 글의 소감을 나누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쟤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에 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최신부터 과거 순으로 쭉 봤어요. 2018년부터 아팠다는 쟤의 투병은 어떻게 시작됐을지, 혹여 기록이 남아 있다면 아프기 전의 쟤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거든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전의 쟤는 헤어스타일도 다양했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모습도 무척 활기있어 보였어요. 자신의 삶을 생기있게 표현하는 쟤의 모습에서 괜히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쟤의 고통에서 쟤의 밝은 모습으로 제가 받아들인 순서가 거꾸로였기에, 되려 쟤가 괜찮아졌다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좀 괜찮아졌을까요? 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금 있는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껏 뛰놀아요 쟤!”라고 댓글을 달았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로는, 제가 글을 나누며 경험한 쟤의 고유성을 다 담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쟤의 삶이, 그 삶에서 잠깐이나마 서로의 존재를 나눴던 시간이 저한테 큰 의미였나봐요.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제 마지막 글에 쟤가 남긴 댓글을 다시 봤습니다.
“현재의 아픈 몸의 생각을 갖고 삼년 후의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 ADHD와 함께 하는 삶을 잘 받아들이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로 느껴집니다. 특히 뇌만이 아니라 다리와 손발도 기억할 수 있게 반복하는 습관 들이기를 시도한다거나, ADHD 증상으로 누군가에게 오해 받으며 살아온 경험이 있기에 다른 이의 약점을 받아들여보자는 다짐을 해본다던가,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연습을, 질병과 나이 먹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이야기하는 이소의 생각에서 저 또한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저도 이소도 한 해 한 해 더 괜찮아졌음 좋겠어요!”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연습’ 이라는 부분에서 제가 펑 울었던 건 안 비밀입니다. 저는 쟤가 말로 표현해준 대로, 조금씩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쟤가 알아봐준 저의 연습문제를 같이 풀기 위해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저의 하루하루가 예전보다 훨씬 충만해졌습니다. 친구들이 제게 어떤 행복을 바라는지, 그 행복을 위해 어떤 부분을 애쓰길 바라는지 등의 신호를 알아챌 수 있었던 건 쟤와의 시간이 제게 준 선물이 아닐지.
저의 아픔을 봐주셔서, 그 아픔을 드러낸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쟤가 보지 못한 시간까지 살아내는 저는, 제 자신이 점점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서로 있는 곳이 달라서 소식을 알 길은 없겠죠. 그치만 분명한 건, 땅에서 사는 저도 하늘나라에서의 쟤도 한해 한해 괜찮을 거예요.
이소가
글 친구이자 동네주민인 쟤에게
쟤 안녕요! 아픈 몸 글쓰기를 함께 한 글 동료이자 같은 구에 사는 동네주민 이소입니다. 하늘나라에 간 쟤의 소식을 들고 “친구 장례식장 다녀올게요” 라고 옆에 있던 아버지에게 말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네요. 덤덤할 줄 알았는데.
흘러나온 울음에 대해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 쟤의 오래된 친구는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갖고 있는 성인 ADHD라는 증상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둔감한 부분도 있거든요. 덕분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응당 ‘이때는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공감보다는 암기로 대응해왔어요. 쟤의 소식을 듣고도 평소마냥 타인의 감정을 애써 짐작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바로 펑 울고 있는 나라니. 퍽 낯설었습니다.
아픈 몸에 대해 말하는 나의 시도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글쓰기 동료여서일까요? 하늘나라에 간 쟤를 생각하며 여러 것이 떠올랐습니다. 더이상 인스타그램에서 쟤의 소식을 알 수 없다는 것. 멀리서나마 서로의 SNS 계정에 댓글로 응원을 보낼 가능성이 사라지는 일. 자신의 글로, 글 모임에서 화면 너머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쟤의 몸과 마음을 더이상 느낄 수 없을 거잖아요. 어쩌다 동네 하천을 산책하다가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할 수 있었을 가능성까지도요.
'내가 잠깐 한달을 나가 살아도 우리 엄마는 내가 없어서 쓸쓸하다 했는데. 쟤의 부재는 그것보다 가늠할 수 없는 상실이겠다.' 장례식장에서 쟤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대화 도중 숫자를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제 머리가 고통의 정도를 나름 계산하고 있었어요. 쟤의 부재가 제 경험 바깥의 고통이라고 느꼈어요.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글쓰기 모임에서 제가 쟤를 만날 때 느꼈던 건 그 압도감이었어요. 그래서 쟤가 느꼈을 신체적 고통 자체보다는 쟤가 쓴 글 자체에서 드러나는 단어 사용이나 문장 등의 반짝거림에 더 집중하며 글의 소감을 나누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쟤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에 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최신부터 과거 순으로 쭉 봤어요. 2018년부터 아팠다는 쟤의 투병은 어떻게 시작됐을지, 혹여 기록이 남아 있다면 아프기 전의 쟤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거든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전의 쟤는 헤어스타일도 다양했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모습도 무척 활기있어 보였어요. 자신의 삶을 생기있게 표현하는 쟤의 모습에서 괜히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쟤의 고통에서 쟤의 밝은 모습으로 제가 받아들인 순서가 거꾸로였기에, 되려 쟤가 괜찮아졌다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좀 괜찮아졌을까요? 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금 있는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껏 뛰놀아요 쟤!”라고 댓글을 달았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로는, 제가 글을 나누며 경험한 쟤의 고유성을 다 담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쟤의 삶이, 그 삶에서 잠깐이나마 서로의 존재를 나눴던 시간이 저한테 큰 의미였나봐요.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제 마지막 글에 쟤가 남긴 댓글을 다시 봤습니다.
“현재의 아픈 몸의 생각을 갖고 삼년 후의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 ADHD와 함께 하는 삶을 잘 받아들이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로 느껴집니다. 특히 뇌만이 아니라 다리와 손발도 기억할 수 있게 반복하는 습관 들이기를 시도한다거나, ADHD 증상으로 누군가에게 오해 받으며 살아온 경험이 있기에 다른 이의 약점을 받아들여보자는 다짐을 해본다던가,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연습을, 질병과 나이 먹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이야기하는 이소의 생각에서 저 또한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저도 이소도 한 해 한 해 더 괜찮아졌음 좋겠어요!”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연습’ 이라는 부분에서 제가 펑 울었던 건 안 비밀입니다. 저는 쟤가 말로 표현해준 대로, 조금씩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쟤가 알아봐준 저의 연습문제를 같이 풀기 위해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저의 하루하루가 예전보다 훨씬 충만해졌습니다. 친구들이 제게 어떤 행복을 바라는지, 그 행복을 위해 어떤 부분을 애쓰길 바라는지 등의 신호를 알아챌 수 있었던 건 쟤와의 시간이 제게 준 선물이 아닐지.
저의 아픔을 봐주셔서, 그 아픔을 드러낸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쟤가 보지 못한 시간까지 살아내는 저는, 제 자신이 점점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서로 있는 곳이 달라서 소식을 알 길은 없겠죠. 그치만 분명한 건, 땅에서 사는 저도 하늘나라에서의 쟤도 한해 한해 괜찮을 거예요.
이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