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만화가 누군가에게 통하고 영향을 줘요


🏡⟨발견한 혐오, 만화 그려요⟩ 라이츠 서포터 남훈 인터뷰



✦ 남훈 반가워요! 간단히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안 죽으려 운동하는 만화가’ 조남훈입니다. 예명은 ‘페달조’예요. 아침에는 운동하고 낮에는 북촌에서 인력거 투어 가이드 일을 합니다. 해가 지면 인력거 차고지에 입주한 작업실에서 만화를 그려요. 직업을 소개할 때 ‘~~밥을 먹는다’ 라고 하는 표현이 있는데, 저는 삼륜 자전거인 인력거로 생계를 이어나가니  ‘페달 밥을 먹는다’ 라는 생각이 들어 ‘페달조’로 짓게 되었어요. 요즘 한창 수영과 프리다이빙에 빠져있고 꾸려 나가는 인스타툰 주제도 대부분 이 둘이다 보니 가끔 예명이 머쓱합니다. 주로 여행, 취미, 제 직업에 관한 만화를 그려요.



미래에는 오랜 꿈이었던 문명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작품을 만들려 합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작품으로라도 사랑과 이해가 승리하는 세계를 그리는 게 만화가로 할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가장 사랑하기 힘든 세계, 장르 용어로 ‘포스트-아포칼립스’라 일컫는 각자도생과 무법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조건에서조차 최소한의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모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멋지게 만들고 남기는 게 꿈입니다. 너무 거창한 주제와 이야기라, 올해는 제가 건강을 되찾은 과정과 운동을 주제로 단편 몇 개를 연습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앞서 말한 모험 이야기를 준비할까 해요.



✦ 요즘 일상에서 즐거운 게 뭐예요?


운동 시작하고 건강을 되찾고 있어 즐거워요. 우연히 시작한 프리다이빙을 계기로 ‘건강한 몸이 되면 기록이 더 나아질까?’ 싶어 할 수 있는 온갖 운동을 시작했었어요. 그간 출퇴근 자전거 타기도 늘리고, 다이빙 훈련 사이에도 물에 있고 싶어 수영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어요. 술도 거의 끊고(아예 끊진 못하겠어요. 가끔 비 오는 날 친구들과 한옥펍에서 마시는 흑맥주는 마음의 보양식!) 건강한 음식으로 식단을 시도하니 스스로 말하기 좀 머쓱해도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저를 걱정해주던 주변 지인들로부터 ‘다행이야~’ 하는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뿌듯하기도 해요. 되찾은 건강만큼 일도 만화도 열심히 정진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최근 큰마음 먹고 결제한 P.T 트레이닝도 인터뷰가 나올 시점에는 2~3주 차에 접어들었는데, 몰라서 아무렇게나 하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배우니 목표한 지점까지 더 효율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매일매일이 기대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장편 만화 도전 이전에 해볼 만한 단편의 주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정말 몸의 건강이 마음의 건강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어요.





✦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만화가 왜 그토록 좋았어요?


1997년 집 근처 책방에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정말 심각한 극화체로 그린 70년대 만화를 마르고 닳도록 빌려 봤었어요. 해당 책은 무려 붓으로(!) 하나하나 인물과 배의 디테일을 그려낸 역작이었어요. 가끔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한 선물을 만들 때 꽤 과한 정성을 들여 아이들의 마음을 불꽃놀이시키는 사연이나 인터넷 밈을 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그해 겨울의 제가 딱 그랬습니다. 세세히 묘사된 만화 속 장면에 완전히 매료된 저는 밥도 간식도 줄이고 매일 장면 하나하나를 따라 그리며 미래의 꿈을 정해버린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그려서 아이들에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죠.


그렇게 해당 만화책 대출 기록에 오로지 제 이름만 빼곡히 채워진 98년 신정 무렵, 절 아껴주던 책방 사장님은 선물로 저에게 아예 그 책을 넘겨주셨어요. 이어서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책 <김충원의 그림 교실>을 선물해주셨고 이웃 아저씨는 인쇄소를 정리하면서 나온 1만 장가량의 재생 종이를 제게 남기고 동네를 떠나셨어요. 제가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1만 장의 갱지가 수백 장 쯤으로 줄어들었을 초등학교 말미, 여러 장르의 만화를 탐독한 저는 이미 꿈을 만화가로 정했어요. 



✦ 만화가가 꿈이었다고 해도 이 일을 하는 건 용기가 필요했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만화를 그려보자는 결심하게 된 경험이 있나요?


가장 자유로운 창작의 방법이라고 여겼던 어렸을 때의 생각이 커서도 변치 않아서였던 것 같아요. 걸림돌은 아무래도 만화나 그림을 단 한 번도 주 전공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점이죠. 제 어린 시절은 웹툰이 이만큼 주목받는 산업이 되기 전이고, 만화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던 때라 부모님은 물론 온 집안의 걱정이 있어 만화를 전공 삼는 건 힘들었어요. 그나마 고교 담임 선생님 선구안으로 ‘예술대학교라도 가라’라는 말씀에 합격한 학과 셋 중에서 영화 기획 학과를 오게 되었죠.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제가 그린 낙서의 양이 엄청난 것 같았어요. 그렇게 4년간 영화와 콘텐츠 기획 전반에 관한 공부를 하며 ‘어쨌든 창작으로 먹고살고 작품을 남기자’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영화・영상은 저에겐 한계가 명확했어요. 스스로 원하는 장르로 나아가기엔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결론이 졸업 1년 차, 친구들과 차린 영상 외주 업체 창업 2년 차에 선명해졌죠.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나?’는 생각도 듭니다. 장인이 도구 탓을 하면 안 되는 일이죠. 그래도 ‘만화’라는 제약 없는 결과물을 잘 알고 있으니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취향이 문제였어요. 표현하기 힘든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가 하필 제 취향이었으니 적은 예산으로 많은 걸 해내야 하는 초보 기획 PD・연출자 입장에선 ‘대체 언제 기회가 오나’ 싶은 생각이 많았죠. 그래서 만화 데뷔를 꿈꾸며 스스로 회사를 걸어 나와, 그때도 경력은 쌓고 있던 인력거 일로 삶은 이어나가며 오늘까지 계속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있습니다.




✦ 전 <자전거와 열차로 84일 동유럽 여행> 만화가 재밌었어요. 잘 몰랐던 이슬람 국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마주한 난민・이주민도 그려줘서 인상적이더라고요. 동유럽 여행에서 할 말이 많을 텐데 그중에서 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담아야겠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리면서 어땠나요?



화려한 이스탄불 거리, 쾌적한 그리스의 해안가 등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여행지에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그 풍경의 일부로 존재해요. 정말로 본 것인데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 건 그 사람들을 외면하는거라 생각해 담아냈습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모국을 떠나온 난민·이주민들이 현지인이 부담스러워 하는 일자리를 맡아주고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발칸반도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오기 전까지는 길거리에서 빵을 팔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랜 시리아 내전으로 유입된 난민들이었습니다. 제가 몰라도 카페에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었죠. 홍차 아홉 잔을 얻어 마셨던 그리스-튀르키예 국경 앞 찻집에서조차 힘든 표정으로 일하는 종업원이 시리아 난민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참 곤란했어요.



여행기는 그 시대의 거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냉전기에 유럽을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분명 그 시대에만 있었고 시대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던 요소들이 등장해 작품의 깊이를 더 해주었었어요. ‘철의 장막’, ‘유고슬라비아’,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간증’ 등이 등장할 수 있는 건 딱 그 시대의 여행기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2020년대에는 2020년대에 현존하고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제가 목격한 것이 있다면 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여행 콘텐츠를 제작하는 분들이 담아내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고, 그 반대 방식으로 ‘나라도 저 사람들을 스크린 위에 한 번 그려봐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신 그 방식은 정말 제가 본 걸 그대로 옮기는 것. 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에 대해 간략한 조사를 공유하는 정도로만 마쳤어요. 판단은 독자들이 하게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 요즘엔 취미에 대해 많이 그리고 나누더라고요. 인스타그램 소개도 ‘안 죽으려 운동하는 만화가'라고 바뀌었던데요. 취미・운동을 만화로 그리며 하고싶은 이야기가 궁금해요.


그림 외 취미가 전부 자전거나 프리다이빙 등 스포츠라서 자연스레 인스타툰 기조가 ‘운동 기록 만화’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그래서 보다 나은 몸 그 자체보다, 그 과정을 거치며 얻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이득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그러나 동시에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걸 5~6개의 피드를 올린 뒤에 깨닫고 어떻게든 좋은 방향을 잡아보려 노력 중입니다. 꼭 객기 부려 바다에 나갔는데 다시 항구로 돌아가기는 뭣한 그런 조각배의 선원이 된 기분입니다.


우선 ‘건강한 몸’은 이 어려운 자본주의 시대를 각자도생으로 살아남기 위한 어떤 스펙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신체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식이죠. 역사책 어디선가 많이 본 스산한 생각 같아 걱정되기도 해요. 매일 좋지 못한 몸의 정의와 해악에 대해 떠들며 마치 내일 당장 운동하지 않으면 삶이 무너질 것처럼 말하는 콘텐츠가 넘쳐 나죠. 그마저 ‘운동하면 좋다’ 보단 ‘안 하면 큰일 난다’ 식의 네거티브한 메시지 위주도 많아요. 스스로 운동하는 과정에서 이런 것에 많이 상처받기도 했어요.

그러면 ‘내가 만드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질문이 늘 꼬리를 물고 있고 솔직히 요즘은 좀 혼란스럽기도 해요. 최근 만나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운동하고 조금 달라진 모습을 칭찬받아요. 감사하긴 한데, 늘 그 다음 이어지는 대화 때문에 진땀을 빼고 있어요. 지인들은 대부분이 인생의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고, 점점 어딘가 아픈 곳도 많아지고 있어요. 주어진 여건에선 저만큼 운동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그런 상황을 토로하며 저를 응원해주는 걸 보며 제가 조심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콘텐츠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일상의 운동’, 지금 기획 중인 중단편 운동 만화의 핵심 주제이고 제가 실제로 지난 반년 동안 꽤 건강해지면서 찾은 방법이에요. 어떤 종목을 정해 몰입하고 매일 운동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과 집을 오가며, 이동 생활·일상 생활 속에서 움직임을 늘려 나가는 한 편, 스스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한 것을 그려볼 생각이에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개개인의 운동을 통한 각자도생 콘텐츠에 열광하는 곳으로 바뀐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에피소드도 넣을까 해요.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곧 사회의 구조가 많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야채가 비싸고 가공식품이 저렴한 문제라든가, 수도권에만 병원이 몰려 안 아플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고생을 하는 문제 등 우리를 아프게 하는 많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몸을 아프게 할 일이 참 많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작은 노력으로도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다. 우리 지지 말고 힘내자’ 정도의 메시지를 가진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 내가 말했다는 것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들이 참 좋을거 같아요. 실제로 이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순간은 언제였나요?


첫 일본 자전거 여행기를 내었을 때, 인스타그램 또는 현실에서 만난 독자 몇 분이 저로 인해 정말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노라 이야기해 준 적이 있어요. 동화책을 냈을 땐 구매해 간 독자님 어린 아들이 밤새워 읽어주었단 이야기에 감동했고 두 번째 자전거 여행기를 내었을 땐, 이야기에 지정학과 세계정세가 녹아있다며 칭찬해 준 독자님 댓글에 감동했어요. 창작자로 사는 순간의 기쁨이 그런 것 같아요.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통했고 그 행동과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다음에 펜을 들 땐 그만큼의 책임감과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어떤 좋은 느낌이 들어 꿈이 굳건히 지켜지는 것 같아요.







✦ 라이츠 기획을 하며 ‘직접 겪지 않았지만 발견한 혐오'에 대해 말해줬던 게 기억에 남아요. 남훈이 일상에 발견한 혐오는 무엇이었나요? 그때 생각과 마음이 궁금해요.


야외에서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 라이더들이 더 자주 곤란한 상황에 빠져요. 정확히는 곤란한 상황이 닥쳐도 더 큰 일을 겪는 것이죠.


제가 단독 투어만 반나절 이상을 돌아 다른 라이더들을 챙기지 못한 어느 봄, 신입 여성 라이더가 거리에서 운행 도중 한 행인의 카메라를 쳐서 떨어뜨려 변상까지 가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나중에 사석에서 들은 바로는, 정말 그 라이더가 행인을 쳤는지는 알 수 없고 오직 ‘쿵!’ 소리가 난 뒤 그것에 놀라 뒤를 돌아본 라이더가 행인과 눈이 마주친 것만이 사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라이더 본인도, 행인 본인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정확히 왜 카메라가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대는 덩치 큰 아저씨였고 이쪽 라이더는 작은 몸집의 여성 라이더였어요. 나쁜 가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 아저씨는 라이더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상황을 따지기 시작하며 결국 변상에 라이더가 동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도 정말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었다면? 혹은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변상까지 갔을까? 하는 생각이 잠자리에서까지 끊이질 않았죠. 제 스스로는 지난 8년 운행을 하며 총 세 번 정도 작은 사고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정중히 사과하면 일이 끝났어요. 발을 밟힌 두 사람의 행인도, 입간판이 쓰러진 가게 주인도 전부 제가 넙죽 허리만 숙이면 넘어가 주었어요.

비슷한 사례로, 다른 여성 라이더 본인이 원인인건지 알 수 없는데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대기하던 관광객의 렌탈 한복이 약간 찢어진 적이 있었어요. 관광객의 주장은 라이더의 바퀴가 훅 들어와 옷을 찢었다였고 라이더의 주장은 당신들이 너무 가까이 붙었다였죠. 이 사건은 제가 우연히 횡단보도 건너 발견했고 즉각 개입했어요. 이번엔 이전의 사건과 결과가 달랐어요. 몸집이 저보다 상대적으로 작았던 상대 남성 관광객이 제가 다가오자 화내는 기색을 줄이는 걸 분명히 봤어요. 그리고 ‘이건 선임으로서 내가 그냥 처리하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제 말도 즉각 받아들였습니다. 같이 한복집에 갔더니, 오히려 주인장은 사람 많은 북촌에서 그럴 수도 있다며 수선비 만 원만 주고 가라며 싱겁게 일을 끝내주었습니다. 관광객들은 갈 길을 가고 저와 라이더는 다시 영업을 하러 갔죠. 일이 끝난 뒤 해당 라이더와 대화해보니 본인은 ‘어쨌든 변상 이야기를 해보자’ 라고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는데 남성 관광객은 본인 여자친구가 말림에도 계속 잘잘못을 따지는 식의 대화를 이어갔다고 하더군요. 미심쩍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한때 잠시 일했던 여성 라이더는 솔로 투어만 나가면, 홀로 영업만 뛰면 열에 두 세번은 지나친 외모와 몸매 품평을 듣고 왔다고 서러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어요. ‘쫓아가서 잡자’. ‘경찰에 신고하자’ 라고 해도 그 뒤의 지난한 과정을 진행하고 버텨낼 자신이 없었는지 그것에는 또 기운 없이 거절하며 결국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끊겼어요. 많이 안타까웠죠. 전기 인력거 도입 이전 대부분 남성 라이더만 가득했던 시절에는 벌어지지 않던 일이라 마음이 불편하죠. 동료 남성 라이더들과 이런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분개하기도 했지만, 위에 제가 개입한 사례 외에는 정말 놀랍게도 우리가 같이 투어를 할 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예요. 사태 재발을 위해 남성 라이더가 꼭 동행해야 하느냐, 블랙박스를 설치해야 하느냐 등의 의견이 오고 갔지만 그때 뿐이었어요. 당사자들이 출근을 하지 않으니 우리도 해결할 동력과 사정이 안 되는 날이 많아 결국 모두 아쉬운 기억으로만 남아있습니다.




혐오가 도처에 만연하고 세상이 참 이중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두 행복한 얼굴로 옛 향수를 느끼러 북촌에 오고 우리는 그 풍경이 되는 일을 해주고 있는데, 어쩜 그리 성별 하나 다르다고 겪는 일들이 다른지. 회사에서 교육 관련 일을 맡게 된 이번 봄부터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려 노력 중입니다. 애써 훈련한 라이더들이 이런 식으로 안타깝게 일을 그만둬버리면 조직 문화에도 공익에도 맞지 않단 생각이 들어요.




✦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혐오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대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느껴요. 큰 범위로 연대자까지 혐오문제의 당사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그럼에도 직접 겪지 않은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겠죠. 그 고민을 솔직하게 나눠줄 수 있을까요? 


많이 망설여지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사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실제로 겪기 힘든 상황에서 공감만 하며 ‘공감 할 줄 아는 나’의 모습만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또는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하려고 합니다. 제가 세상에 이런 문제를 발화하는 방법이야, 작가니까 작품으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당사자는 아니니 표현할 적에 우회하거나, 남들이 시선을 두지 않는 곳을 조명하는 정도로 하면 된다고 일단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은 것 같아요. 여행기가 편했던 점은, 정말 그냥 봤던 모습 그대로를 묘사하면 되는데 아직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은 그려본 적이 없어요. 친구들과의 대화, 지인들과의 대화야 우리끼리 하는 대화니 얼마든 화내고 열을 낼 수 있지만, 혐오문제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일반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타겟으로 한 작품은 아직 내지 않아 과연 어떤 톤과 매너로 그런 문제들을 그려낼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 <발견한 혐오, 만화 그리기> 라이츠를 준비하며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림을 그려야 하다 보니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한 가이드를 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서로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볼 수만 있다면 그를 소재로 대화하는 일은 그림의 도움이 있으니 쉽지만, 그 무엇이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 아닐까 싶어요. 별개로, 그림을 전혀 그려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서 오는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을 받아 가셨으면 해요. 생각을 옮겨놓는 수단에 그림이 더해지면 삶이 더 다채로워진다고 생각해요.



✦ 라이츠에 어떤 스피커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혐오 문제를 겪는 당사자분들도 좋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 아팠던 분들. 혹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방관하지 않았나 자책 내지는 아쉬운 마음이 든 분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와주셨으면 해요. 저도 한발 물러나서 집에 가 속 썩인 적이 훨씬 많은 사람이라 같이 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해요.



✦ 라이츠 서포터로 가장 기대되는 건 뭘까요?


공감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로 모르는 분들과 뵙는 모임을 만드는 건 생애 처음이라 긴장되는 맘이 훨씬 앞섭니다.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 시원하게 서로 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지금은 제일 큰 것 같아요. 생각한 대로 다들 그림 그리는 것을 재밌어하실지 그걸 매개로 대화 나눈 뒤 개운한 맘으로 집에 돌아가실 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해 보려고 해요. 



✦ 마지막으로 곧 만날 스피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그림을 처음 그려보는 분들이라면 낯설 순 있지만 종이 위에 할 말을 묘사해 보는 것이 마음의 불편함을 옮기는 데 꽤 재미난 일일 수도 있다는 맘으로 편히 와주셨으면 해요. 짧은 시간이니만큼 묘사에 어려움이 있다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려요. 해 질 녘 사월 북촌에서 뵙겠습니다!





🏡발견한 혐오, 만화 그려요✨라이츠 (링크)

쓱쓱 그리는 소리와 함께

발견한 혐오를 만화로 그려요

마음을 가지런히 치유하는 자리가 될 거예요


🗓️ 4월 18일 목 저녁 7시 30분

🏡 서울 북촌 한 공간

👥 최소 5명~최대 10명

🎟️ 4만원



함께한 사람들

• 라이츠 서포터・인터뷰이 : 남훈 @pedal_cho

• 인터뷰어 : 무수 @musu.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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